지금은 애연가가 되어 버린.. 하지만 나 역시 고3까지는 극렬한 금연주의자였다.. 금연 비디오를 보면서 '왜 저런 걸 돈 주면서 피우나..' 라는 생각도 하고.. 주위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이 있으면 냄새 밴다고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고.. 그랬었다..
물론 누구나 그랬듯이 흡연의 첫경험은 나에게 참 빨리도 찾아 왔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미술학원 선생님의 담배를 몰래 하나 빼서 피워 봤던 것... 무지무지 괴로웠었고.. (그래서 한동안 철저한 금연주의자였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첫경험이 너무 강렬했다... (88... 디럭스였나? 참 독한 담배를.. -_-)
여튼.. 그랬던 나에게 다시 흡연의 기회가 찾아 온 것은 재수할 때였다.. 몰려다니는 친구들 중.. 좀 간지 나는 애들은 담배를 이미 피고 있었다.. 얌전한 모범생의 이미지인 나는 왠지 소외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담배에 손을 댔다.. 티 안나는 겉담배..
또 하나.. 만화를 즐겨 보는 나에게.. (위의 기사는 영화에 대한 것이지만...) 담배를 피는 캐릭은 흡연의 용기를 주었다.. 도쿄 바빌론에서 엑스로 넘어 오면서 훌쩍 커버린 스바루의 손에는 어느덧 담배가 들려 있었고 그린우드의 냉철한 학생회장 시노부은 고등학생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흡연을 했다.. 뭐.. 동경하는 대상이.. 그리 흡연을 하니.. 반발감 없이.. 슬쩍.. 담배에 손을 댄 듯 하다..

이런 인물이 공허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면.. 정말 간지 나지 않는가...
그런 후까시 겉담배가 속담배로 변하게 된 것은 대학 입시 때.. 원하는 대학과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납치되다시피 후자 쪽으로 끌려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입학을 하게 된 나의 몸부림치는 최소한의 반항은 흡연이었다. 고민이 해결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눈 앞에서 사라지는 연기와 폐 속으로 들어 오는 그 갑갑함이 오히려 나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었다..
그래도 향수 한 두 번이면 담배 냄새가 사라질 정도의 light smoker 였는데.. 나를 지금의 heavy smoker의 길로 이끌게 된 사건은 대학교 2년 동안의 짝사랑이었다. 나를 가장 이뻐해주는 선배를 짝사랑하는 내가 짝사랑하는 그녀.. 이런 릴레이식 관계의.. 제일 꼴찌에 존재하던 나는.. 그녀가 선배에게 잘보이려고 노력하고 작은 것에 기뻐하는 그 모습에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뿌연 연기만을 내뿜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핸드폰과 마찬가지로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게 담배가 되어 버렸다. 가끔씩 나오는 발작성 기침과 몸에 밴 냄새 덕에 끊어 볼까.. 생각도 하지만.. 그래도 손을 놓기는 힘들다.. 흡연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른다.. 하얀 연기를 들어 마시며 세상의 모든 기운을 빨아들이는 듯한 기분과.. 나의 몸 속, 마음 속 노폐물을 한껏 내뱉는 듯한 그 회색빛 날숨의 그 맛을..
* 위의 글이 05년 11월의 글이고.. 현재의 나는 아직도 흡연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인지 나는 금연 서약서를 받은 회사로 이직을 했고.. 나를 끌어온 본부장과 대표는..
"흡연 검사가 있긴 하지만, 잘 피할 수 있을 거야.." "전자 담배는 잘 안 걸려..." 등의 말로 나를 회유했다..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연초 애연가 이다...)
그동안은 비흡연 팀원의 협조로 이리 저리 수사망을 피해 왔지만 지난 5월, 뭔가를 마음 먹었는지 사측에서는
흡연 검사를 무척이나 타이트하게 진행했다. 소변 검사였는데 샘플 바꿔치기를 많이 한다는 말을 들었는지,
거의 고추를 쳐다볼 듯이 뒤에 서서 샘플을 채취하고 테스트를 진행했다. (영화 가타카의 에단 호크 정도 되어야
회피가 가능했을 듯)
결과는 어김없이 양성이 나왔고 오늘 페널티가 메일로 날아왔다. 5만원의 기부금과 6월 말까지 보건소의 금연프로그램
등록, 그리고 2시간의 사회봉사 이수.. 내가 뭘 그리 잘 못했나.. 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뭐 거의 20여년 간 내 곁을 지켜
준 친구 녀석과 슬슬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할 듯 하다... 몸이 잘 버텨 주지 못한다는 느낌이 점점 들기 시작한다..
어쨌든.. 보건소에 등록할 6월 말까지는 마지막 밀회를 열심히 즐겨봐야 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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