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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iler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by 마하로바 레이 2023.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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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slation)]을 보았습니다. 소피아 코폴라는 [대부] [지옥의 묵시록]등을 만든 거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입니다. 코폴라 가문은 미국 영화계의 명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쟁쟁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그녀의 사촌 오빠이고,(그는 코폴라 가문의 후광을 얻는게 싫다며 성을 케이지로 바꿨다더군요. )또 [존 말코비치 되기],[어댑테이션]을 연출한 재능 있는 감독 스파이크 존스가 그녀의 남편입니다.
소피아 코폴라는 아버지 덕에 10대 때 [대부4]편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지만 작품과 함께 그녀의 연기도 평단의 혹평을 받았습니다. 얼떨결에 출연했다가 이런 비난이 쏟아지자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계속 영화 의상, 미술 등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이번 작품을 두 번째로 연출했고 아카데미 사상 최초로 여성 감독으로서 감독상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세워 아버지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보여줍니다.

낯선 도시, 낯선 만남
헐리우드의 한 물간 배우 밥(빌 머레이)은 일본의 위스키 브랜드인 산토리 위스키 광고를 찍으러 낯선 도시 도쿄에 옵니다. 아이들과 자신의 일로 바쁜 미국에 있는 아내와의 통화도 심드렁하고 지구 반바퀴를 날아온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냅니다. 게다가 광고주는 밥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신없는 TV 토크 쇼에 출연을 의뢰하고 매니저가 이를 받아 들이는 바람에 예정보다 이틀을 더 머물러야 하는 사실에 절망합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진작가와 결혼한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남편의 일 때문에 도쿄의 같은 호텔에 머뭅니다. 남편은 일에 빠져 있고 혼자 호텔에 남겨진 샬롯은 고독과 권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낯선 이방의 도시에서는 그 탈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쿄의 번잡한 도심 한 가운데 높이 솟은 호텔방은 마치 거대한 인공 섬처럼 정적과 고요로 샬롯을 압박합니다. 호텔 바에서 우연히 만난 밥과 샬롯은 호감을 갖게 되고 우정도 아니고 연정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시작합니다.

이 영화는 줄거리를 나열하기가 어렵게 느껴집니다.그냥 낯선 곳에 떨어진 두 사람이 지내는 1주일이라는 단 한 마디로 줄거리를 요약할 수도 있죠. 어떤 사건이나 흔히 One night stand 로 대변되는 불장난 같은 뜨거운 사랑이 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약간은 지루하기까지 하죠. 현대인이 느끼는 여러 형태의 고독과 소외, 권태, 외로움을 주제로 다루는데 영화의 무대를 미국인인 주인공들이 영어가 안 통하는 일본 도쿄로 설정하면서 이를 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려 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전에 워크샵 차로 갔을 때인데, 목적이 관광도 아닌 이상, 낯선 곳에 있다는 묘한 흥분이나 떨림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그냥 숙소에서 텔레비전만 볼 수 밖에 없더군요.물론 저야 말은 통해서 그래도 나았지만요.

샬롯은 괴로운 마음에 미로 같은 전철을 타고 바깥 구경을 하기도 하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친구는 샬롯의 절박한 목소리를 그냥 건성으로 듣다가 결국 “내가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습니다.

밥은 잠 못 드는 밤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가 옛날에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를 봅니다. 얼굴은 분명 젊은 시절 자신인데 대사는 더빙이 되서 자신의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가 쏟아져 나옵니다. (신기해 해야 할지 황당해 해야 할지 모를 애매한 분위기…)

영화 속 장면들은 이국 땅이 아니더라도 우리들이 삶의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는 순간과 체험들로 이어집니다. 두 남녀는 별다른 말 없이 쉽게 친해지고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지만 거기까지 뿐이고 영원한 해결책은 없어 보입니다.

사실 이런 고독과 소외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소통의 부재에서 온다고 보여집니다. 고독이나 외롭다는 느낌에 대해 느끼는 ‘나’는 심각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고작 ‘별것도 아닌 것 같고 너무 심각하게 그러지 말라’거나 심지어는 ‘네가 도대체 그러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는 충고를 받을 만큼 작고 가볍게 여겨지기 쉽습니다.

인식의 상대성 때문에 이렇게 어긋나고 고통 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내’가 느끼는 고독과 소외에 대해 내가 느끼는 그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나’ 자신도 정확히 모르거니와 곁에 있는 친구나 가족들이 헤아려 주기를 기대해 보지만 그 역시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기 쉽습니다. 흔히 '너만 그런 게 아냐.' 라는 한 마디면 입을 다물게 되죠. 그런 상황에서는 오고 가는 ‘말’은 있을지라도 진정한 ‘대화’는 존재하기 어렵게 됩니다. 아마 인간이기 때문에 짊어지고 가야 하는 숙명이 아닐까요? 단지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한 꺼풀씩 성숙해 간다면 사는 보람이 있는 것일 터이지요.

독특한 관계, 그리고 사랑?
낯선 이국 땅 초 현대적인 도심 한가운데에서 중년 남자와 젊은 여자가 느끼는 고독과 소외를 마치 명상하듯이 그려냅니다. 여성 감독 특유의 감수성이 빛을 발합니다. 남자와 여자 개개인의 심리나 행동에 너무 가깝게 다가가지 않고 둘 사이의 감정의 진폭도 겉으로만 봐서는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여백 때문에 영화는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주파수를 맞추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머리 속으로 저 상황에서 저런 사건이라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열심히 고민하고 생각해야 했습니다.. -_-) 남자와 여자의 로맨스를 그린 이야기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정사 장면이 없습니다. 고작 잠 못 이루는 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 남자가 여자의 발에 지긋이 손을 얹을 뿐입니다. 만남의 시작과 과정도 그렇지만 결말의 이별도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하지만 밥은 나이트 클럽 여가수와 하룻밤 정사를 나누기도 합니다. 감독은 남녀관계에서 ‘섹스’의 의미에 대해서도 새롭게 보기를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주로 가벼운 코미디나 액션물에서 활약하던 빌 머레이는 이번 영화에서 쓸쓸한 중년의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줍니다. 감독은 각본을 쓸 때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썼고 섭외를 위해 일 년 넘게 접촉하며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스칼렛 요한슨도 관록이 넘치는 상대역에 절대 뒤지지 않을 만큼 빼어난 연기를 보여줍니다. 남 녀 모두 많은 말보다는 표정과 몸짓으로 연기의 대부분을 표현해 더 많은 여운을 느끼게 합니다.

두 남녀는 서로가 이미 많은 상처를 받은 여린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관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통속으로 빠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의식의 과잉으로 관객들로부터 외면 받지도 않는 적절한 선에서 고독과 소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남녀를 새로운 시각으로 묘사합니다. 항상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지만 그 속에서나마 치열한 고민과 성찰을 높이 평가하는 아카데미의 전통과 썩 어울리기에 감독상을 포함한 여러 부문에 후보로 자리매김했다고 보여집니다.

마지막 장면, 밥이 일본을 떠나는 날, 달리던 차에서 내려 길거리를 걸어 가던 샬롯을 쫓아가 깊은 포옹을 나누고 귓속말을 한 후, 진한 키스로 묘한 여운을 남기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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